자본주의경제의위기와공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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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짧고굴게 조회 4회 작성일 2021-01-20 18:58:4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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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공황이 발생할 때의 상황! 바뀌는 미국의 금융 자본주의! | 홍익희 교수 (경제위기, 빈부격차)

"돈의 인문학" 저자 세종대학교 홍익희 교수 (촬영일 9월27일)

미국의 금융 자본주의가 바뀌고 있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갖고 갈 때 생기는 현상

미국,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근본 틀이 바뀌고 있다

재정정책의 주요 3대기능: 자원배분의 조정, 소득재분배, 경제안정화

미 은행권, 유동성을 거둬 들이고 있다

경제 대공황, 경제 위기 | 5분 통합사회

일반사회, 윤리, 지리, 역사 과목 간 융합을 표방한 고1 통합사회 교과서의 핵심 개념을 생활 밀착형 사례와 통합적인 관점으로 새롭게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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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붕괴될 뻔했던 대사건!! | 대공황, 경제위기, 뉴딜 | 정치외교, 국제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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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20년대 당시 역대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1929년 검은 목요일 이후로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는데...

[스크립트]
미국은 1920년대에 이르러
역대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기 시작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시기를 미국이 완전히 미쳐 돌아버린 시기
‘광란의 20년대’라고 불렀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자신들의 대륙에
온갖 포탄과 생화학 무기를 퍼부었던 유럽과 달리,
본토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던 미국은
막강한 산업력과 전후 보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통해
명실상부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거듭나게 된다.
이 시기의 미국은
석유, 자동차, 화학제품, 전기, 라디오, 영화, 음악 등등
어떤 사업이든 간에 건드리는 족족
폭발적인 성공을 이루어 냈고,
실업률은 4%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기록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욕구를 통제당했던 젊은 세대들은
술, 섹스 그리고 재즈에 심취해 YOLO를 만끽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보수층이 이에 경악하며
술 판매를 금지하는 금주법이라는 미친 법을 제정하였으나,
오히려 이 시기의 술 수요량은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보수파들에게
빅엿을 선사하고야 말았다.
이처럼 미국 사회 전체에는 이미 낙관론이 팽배해있었고,
겉으로 보여지는 성과마저도 너무나 완벽해 보이니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미친 듯이 폭주하던 미국도
그 뿌리에서부터 서서히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는데...
첫 번째로, 자유 방임주의의 가장 큰 부작용이었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점점 더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간신히 입에 풀칠할 수 있을 만한
최저의 생계비는 1,800달러 정도였는데,
최저임금 개념이 없던 1920년대 미국에서
노동자들의 평균 수입은 1,5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었다.
또한, 1차 대전 동안 식량 조달로 인해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던 농업계는
전쟁이 끝나면서 식량의 수요가 뚝! 떨어져 버리게 되었다.
그동안 전쟁 때문에 확장시킨 경작지와 농산품으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은 바닥을 모를 정도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농업계는 모두가 미쳐있던 ‘광란의 20년대’ 동안
끊임없는 불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노동자와 농부들의 구매력은 결국 한계에 도달하고 만다.
그러나 뭐든 하기만 하면 대박이 터질 것이라는
낙관주의에 미쳐있던 기업들은
지금보다 더! 더! 더! 많은 돈을 쓸어 담기 위해
공장에서 쉴새 없이 상품을 찍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공급이 수요를 급격히 추월해버리는 현상은
이미 끔찍한 결과를 암시하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던 낙관주의는
결국,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투기로까지 번지게 되었고,
자본가, 노동자, 농민, 운전기사 할 것 없이
모두가 빚을 끌어오면서까지 투기를 벌이기 시작했다.
누구든 넣기만 하면 무조건 따따블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부동산의 버블은 미친 듯이 커져갔고,
주식은 실제 가치보다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어 거래되었다.
마치 코끼리가 의자 끝에 올라서 있듯
위태위태했던 경제구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찬란하고
끝없이 번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날 우리 미국은 어떠한 나라보다
빈곤에 대한 마지막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29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의 취임사는
너무나도 확고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리고 1929년 9월 3일,
다우 지수는 381.17을 기록하며 절정을 이루게 된다.
모두가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앞으로의 행복한 미래만을 떠올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 산업을 견인하던
철강, 자동차, 건축 분야의 생산력은
수요 하락으로 인해 점점 기울어가기 시작했고,
이는 마침내 부동산까지 흔들어 버리게 된다.
이상한 조짐을 느낀 해외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발을 빼기 시작했고,
이후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조금씩 밀려 들기 시작했다.이러한 불안감은 결국, 900만 명이 넘는 투자자들에게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선사했고
결국, 누구 할 것 없이
서로 앞다투어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1929년 9월 3일 381.17이라는
역대 최대의 신기록을 세웠던 다우 지수는
고작 한 달 뒤인 10월 24일,
230.07라는 대폭락을 이루고 만 것이다.
이날이 바로 대공황의 시작을 알린 ‘검은 목요일’이다.
하루에 수천 개의 기업이 증발해버렸고,
노동자들은 전부 실업자가 되었다.
주식을 위해 수백 만의 대출을 끌어모았던 투자자들은
맨해튼의 고층 빌딩 위에서 앞다투어 몸을 던져버렸다.
세계 총 생산량의 42%를 차지하던 미국이 작살이 나자,
이후 유럽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까지
도미노처럼 모조리 쓸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미국이 개작살이 나고 있는 와중에도
당시 대통령이었던 후버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실업자들과 굶주린 자들을 구제해야 한다는
미국 내 여론에도
‘그것은 공산주의 빨갱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며
끝까지 반대를 하고야 만 것이다.
그러는 동안 미국의 경제는 계속해서 박살이 났고,
1932년 미국 노동자의 1/4이 실업자로 전락했다.
한편 진짜 공산주의자들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팔딱팔딱거리며,
‘우리의 위대하신 마르크스님의 예언이 옳았다’면서
공산주의의 미국이 탄생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3년 3월,
이러한 판세를 뒤집을 난세의 영웅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대선에서 후버를 밀어내고 새롭게 당선이 된
프랭클린 루스벨트였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적은 두려움 그 자체입니다!” (영상)
루스벨트는 지금까지 후버가 주장해 온
‘보이지 않는 손’ 따위로는
절대 대공황을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만이
이 참사를 해결할 유일한 탈출구라고 확신하였고,
이를 실제 정책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뉴딜 정책’이다.
루스벨트는 의회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취임 후 약 100일 동안 온갖 개혁안들을 통과시켰는데,
훗날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역사적인 100일’이라고 칭했다.
이후에도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은행과 금융권을 뜯어고쳤고, 농업 부흥에 힘썼으며,
노조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또한 도로 건설, 제방 건설, 교량 건설,
공항 건설, 철도 건설 등등등등
온갖 국가 주도의 공공사업을 육성시켰는데,
이 같은 소련의 계획경제를 연상시키는 듯한
사회주의적 정책으로 인해,
이를 지켜보던 공산주의자들은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니들 자본주의라면서요??”
이러한 뉴딜 정책 덕분에
미국의 경제는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약 4년간
가시적인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GDP는 5.2%의 준수한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다양한 공공사업들은 국민들의 소득과 지출을 향상시켜
내수경기를 진작시켰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대공황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으로 인해
결국,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1937년을 기점으로 불황은 또다시 미국을 휩쓸고 말았다.
줄어들었던 실업률은 급격히 치솟아 27%를 기록하게 되었고,
10년간 지속되던 흉년은 농민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또한 대규모 공공사업이 발생시킨 재정적자는
이전과 같은 과감한 정책 시행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미국이 또다시 경기 불황에 직면하게 되자,
뉴딜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보수파들이
일제히 루스벨트를 비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공황 시기 동안 경기 회복을 이끌었던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결국 한계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야말로 대공황 속 또 다른 공황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루스벨트가 경기 불황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던 와중
갑자기 이 녀석들이 튀어나오게 된다!
히틀러를 필두로 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미친 듯이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동안이나 지속되던 불황은
유럽 대륙에 파시즘이라는 끔찍한 괴물을 탄생시켰고,
베르사유 체제와 대공황으로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났던 독일에서는
나치당이 집권하는 결과를 자아냈다.
이렇게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게 되자,
미국은 또다시 중대한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참전을 해야 하나? 중립을 지켜야 되나?
제1차 세계 대전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던 미국은
결과적으로 고립주의를 선택하며
중립을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연합국에게 무기를 팔아먹는 것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한동안 경기 불황으로 골골대던 미국 경제는
1938년을 기점으로 점차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터져버린 세계 대전은
미국 경제를 단숨에 공황에서 끄집어내 주었다.
전쟁으로 인해 급증한 식량 수요는
농민들에게 1차 대전을 상회할
역대 최대의 호황을 안겨다 주었고,
전쟁물자의 수요는 제조업 분야의
폭풍 성장을 불러 일으켰다.
자동차 회사들은 항공기를 생산해 팔아치우기 시작했는데,
한창때는 폭격기를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찍어내는
엄청난 위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조선, 알콜 음료, 섬유, 식품 가공 등
한동안 시무룩 해있던 수많은 산업들이
전시 수요 증가를 통해 하나 둘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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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영상 (01:38~01:45)
Stock footage provided by Videvo, downloaded from www.videvo.net
댐 (06:05~06:10)
산업 기계 (07:54~08:00)
www.videezy.com
Kevin MacLeod의 Griphop은(는)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라이선스(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에 따라 라이선스가 부여됩니다.
출처: http://incompetech.com/music/royalty-free/index.html?isrc=USUAN1100413
아티스트: http://incompete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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